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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림이의 유서 때문인지 다시 두통이 몰려왔다

 

 

 

 

그림이의 유서 때문인지 다시 두통이 몰려왔다

 

 

 

 

 

 

아스피린을 먹고 싶었지만 그런 건 없었다.

고통에는 고통으로 제압하라. 그런 심정에 혁주가 채워준 잔을 비웠다.

그리고는 혁주의 앞에 있는 소주병을 뺏어 다시 잔을 채우고 비웠다.

 

"야, 너 괜찮냐? 갑자기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냐."

혁주가 병을 기울이려던 내 손을 잡았다.

머리가 아파서, 라고 대답하자 그는 소주병을 뺐어갔다.

 

"야. 그렇게 술 스트레이트로 마시면 머리 더 아프다. 천천히 마셔 인마."

취기가 오는지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.

 그렇게 술이 약한 것도 아닌데 속이 쓰려왔다.

눈이 풀렸다는 게 내게도 느껴졌다.

'모두 고마워'라고 빨갛게 적힌 문구가 내 배를 강타하는 것 같았다.

 

 

나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.

어디 가냐고 묻는 세정이를 뒤로하고 단숨에 화장실로 달려갔다.

도착하자마자 변기통에 대고 토했다.

우욱! 괜찮냐? 혁주의 목소리가 귓가에 방음유리창을

단 듯 희미하게 들려온다.

 

 

난 대답을 했다. 우욱!이라고. 시큼한 냄새가 풍겨오며 코끝을 아렸다.

다시 우욱!하자 생침이 입술 끝에서 흘러내렸다.

옆구리가 심하게 아파왔다. 양 끝을 잡고 마구 비트는 고통이 몸 전체를 감쌌다.

씨…발. 변기통 안에서 욕이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.

나는 레버를 내려 토사물을 흘려보냈다. 변기통 뚜껑을 덮고

그 위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. 아까보단 두통이 조금 줄어들었다.

 

 

"너 전에도 그런 적 있다."

혁주의 목소리가 울렸다.

(화장실이라서 울리는 걸지도 모르겠다.) 어지럽다.

 

"너 중2 끝나갈 때 술 마시고 토했는데,

그 때 길에 토했잖아. 아후, 그때 생각만하면

참. 옷이며 신발이며 범벅이었던 거 기억나냐?

 

그래서 애들이 너 '범벅맨'이라고 놀려 댄 거 기억 안 나냐?"

범벅맨? 모르겠다. 기억 안 난다.